예수님을 믿는자들을 향하여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까지 쫓아가서 그들을 잡고자 하는 열심인 바울이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은 우리를 너무 많이 들어왔다..
성도간에 사도 바울을 부르신 것들에 관한 지식적인 내용들이 이야기 되었다
먼저 회심전 사울이라는 이름은 큰자라는 뜻이고 회심후 지은 이름 바울은 작은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바울은 일명 요즘시대로 말하면 금수저라고 할수 있다. 다소라는 문명이 발달한 도시에서 태어났으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유명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여서 학식이 풍부하였으며 회심 이후성령으로 충만하게 함과 더불어 그 학식이 구약과 신약의 종합적인 연결을 하여 성경을 기록하고, 유대인이 율법에서 벗어나야 함과 이방인들을 예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데 기여하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음을 나눔하였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는 아마도 눈이 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육신이 약할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도바울의 회심부분은 세번나오는데 사도행전에 오늘 다른 9장본문, 22장 바울스스로 히브리방언으로 히브리인들에게 증언,
26장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이 세 번이나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참다운 복음전파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유교의 충효사상이나 샤머니즘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환상중에 아나니아에게 임하셔서 사울을 만나러 가라고 명하신다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아나니아는 기록에서 보면 예수님의 제자였고 성령에 이끌려서 환상중에 예수님과 대화를하고 그 명에 순종하였다
사울에게 안수하고 사울형제여! 라고 말한 부분이 그 전에는 읽어도 보이지 않던 내용이 와 닿았다
사울은 즉시 제자들과 복음을 전파하면서 며일동안 머물렀으나 사울을 잡으려는 자들이 오자 제자들이 광주리에 달아내려 탈출시킨다 사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살펴보면
17절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 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 일을 유할새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삼년간 시간을 보낸 후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 하게 된다.
아라비아 광야에서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신념들을 성령의 조명하심아래 다시 말씀으로 재 구성하여 탄생하여 마침내 바울이라는 사도로 예수님 앞에서 진정 작은자로 칭하고 거듭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레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고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바나바라는 인물에 대하여서 우리는 나눔을 하지 못하였는데 늘 듣기만 하고 말씀을 잘 안하시는 자매님깨서
바나바라는 사람의 역할 이 참 귀하다고 하시며 사울의 회심한 것을 사실이라고 보증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하셔서 우리 모두 소중히 여기며 공감하였다.
베드로가 팔년동안 자리보전하던 중풍병자 애니야를 일어나게 하는 기적을 행하였다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죽었는데 다시 살리는 기적을 행하였다.
다비다는 성경에서 칭한 여제자이며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
시체를 깨끗하게 씻어서 눕히고 베드로를 청하였다는 것은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릴것이라는 소망과 믿음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구절에 대하여 우리 모임에 가장 젊은 형제가 질문하였다.
요즘에는 이런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이 없는가? 이런 기적이 다비다 라는 사람에게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가장 나이많은 74세 자매님께서 즉석에서 성경구절 요한20장21,22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기적들을 행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읽어 주셨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가 많은 여제자로서 죽은상태에서 회생시키는 대상으로 적합하였다는점도 많은 성도들이 동감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으로 더이상 예언도 기적도 방언도 폐하여졌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나, 현대에도 성령의 역사하심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복음전파를 위하여 오지에는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과 병이 낫는 표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베드로가 애니야의 병을 고칠때에는 애니아냐 예수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라 하고 하시는데
다비다를 살리실때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이 나오지 않고 다비다야 일어나라 라고 명한것이 다르다고 다른 자매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보통 듣기만하고 말씀을 잘 안하시는 자매님이 성경을 자세히 읽고 이런 질문을 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아랫부분에서는 베드로가 사람들을 내보내고 혼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을 알수 있다. 죽은사람을 살리는 부분에서 얼마나 심적인 부담이 있을 것인가.. 일어나라고 명했는데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난감한 일이 아닌가? 혼자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분명히 다비바를 살려주실 것이라는 응답과 확신이 있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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